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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학자의 캔버스 (Artinerary)
색을 소유하려는 인간의 욕망: '반타블랙' 전쟁과 카푸어의 오만 본문
안녕하세요, 예술의 이면에 숨겨진 이야기를 탐색하는 아티너리(Artinerary)입니다.
미술사에는 특정 색채를 사랑한 화가들이 많았습니다. 이브 클랭의 파란색(IKB)이나 반 고흐의 노란색이 대표적이죠.
하지만 최근 현대 미술계에서는 색채 하나를 두고 거대한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바로 세상에서 가장 검은 검정이라 불리는 반타블랙(Vantablack)과 이를 독점한 세계적인 거장 아니쉬 카푸어(Anish Kapoor)의 이야기입니다. 오늘은 이 흥미로운 색채 독점 사건을 전공자의 시선으로 분석해 보겠습니다.
1. 빛을 삼켜버린 어둠, 반타블랙(Vantablack)의 등장
단순히 '어두운 색'이 아닙니다.
영국 서리 나노시스템즈(Surrey NanoSystems)가 개발한 '반타블랙'은 탄소 나노튜브를 수직으로 세워 빛이 들어오면 그 사이를 헤매다 갇히게 만드는 원리를 이용합니다. 빛의 99.965%를 흡수하는 이 물질은 우리가 눈으로 보는 사물의 입체감을 완전히 파괴합니다. 아무리 굴곡이 심한 조각이라도 이 물질을 칠하는 순간, 독자들은 그것을 물체가 아닌 '우주로 통하는 구멍'이나 '평면적인 블랙홀'처럼 느끼게 됩니다.
사실 영국의 나노시스템즈사가 개발한 '반타블랙'은 예술용이 아닌 인공위성이나 군사적 목적으로 만들어진 물질입니다.
빛의 99.965%를 흡수하기 때문에, 이 물질을 바른 입체물은 마치 구멍이 뚫린 것처럼 평면적으로 보이게 됩니다.
이 '완벽한 검정'은 전 세계 예술가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죠.

2. 아니쉬 카푸어의 독점 선언과 미술계의 분노
세계적인 조각가 아니쉬 카푸어(Anish Kapoor)는 이 블랙홀 같은 검정색에 매료되었습니다.
그는 곧바로 제작사와 손을 잡고, 이 물질을 '예술적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독점 계약합니다.
"나 이외의 어떤 예술가도 반타블랙을 쓸 수 없다"는 그의 선언은 현대판 예술 독점 사건으로 불리며 거센 비판을 받았습니다.
예술계에서는 "색은 자연의 선물이며 인류 공통의 자산인데, 돈으로 창작의 자유를 묶어버렸다"는 분노가 들끓었습니다.
마치 어느 한 화가가 '파란색'을 혼자만 쓰겠다고 선언한 것과 다름없는 충격적인 사건이었기 때문입니다.

3. 스튜어트 셈플의 발칙한 복수와 '핑크' 저항군
이 오만한 독점에 가장 기발한 방식으로 반기를 든 작가가 바로 영국의 스튜어트 셈플(Stuart Semple)입니다.
그는 카푸어의 독점욕에 대항하기 위해 세상에서 가장 선명하고 강렬한 형광 분홍색인 '핑크(Pink)'를 직접 개발했습니다.
그리고 전 세계 누구나 단돈 3.99파운드에 이 물감을 살 수 있게 공개했죠.
단, 구매 조건이 매우 독특했습니다. 결제창에서 "나는 아니쉬 카푸어가 아니며, 그와 협력 관계도 아니고, 이 물감을 그에게 전달하지 않겠다"는 확인 절차를 거쳐야만 했습니다. 이는 예술적 독점에 대한 유쾌하면서도 날카로운 풍자였습니다.


4. 꼬리에 꼬리를 무는 유치한 전쟁, 그리고 남겨진 질문
카푸어는 결국 이 금지된 분홍색 물감을 손에 넣었습니다. 그리고는 가운뎃손가락에 핑크색 가루를 묻힌 사진을 자신의 SNS에 올리며 셈플과 예술계를 비웃었죠. 이 유치한 싸움은 훗날 '세상에서 가장 반짝이는 글리터', '세상에서 가장 하얀색' 개발 경쟁으로 번지며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 아티너리의 미술사적 포인트
이 사건 이후 미술계에서는 색채와 재료에 대한 활발한 담론이 형성되었습니다.
스튜어트 셈플은 이후에도 세상에서 가장 반짝이는 글리터, 가장 하얀 하양 등을 개발하며 예술의 공유 가치를 주장해 오고 있습니다.
아니쉬 카푸어의 반타블랙 독점은 결과적으로 예술가가 기술을 소유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우리에게 던졌습니다. 진정한 거장은 독창적인 재료를 독점하는 사람이 아니라, 누구나 쓸 수 있는 재료로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세계를 만드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기술이 만든 가장 깊은 어둠이 한 예술가의 전유물이 되는 것이 정당하다고 보시나요? 이 기묘한 색채 전쟁은 여전히 현대 미술의 중요한 화두로 남아 우리에게 예술의 본질을 묻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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