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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학자의 캔버스 (Artinerary)

도쿄 국립서양미술관: 르코르뷔지에가 설계한 무한 성장 박물관을 걷다 본문

일본 미술 여행 준비 (Japan Art Travel)

도쿄 국립서양미술관: 르코르뷔지에가 설계한 무한 성장 박물관을 걷다

Artinerary 2026. 1. 20. 07:30

안녕하세요, 예술의 경로를 기록하는 아티너리(Artinerary)입니다.

 

도쿄 우에노 공원의 수많은 미술관 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회색빛 노출 콘크리트 건물이 있습니다.

바로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근대 건축의 거장 르코르뷔지에(Le Corbusier)가 설계한 국립서양미술관 본관입니다. 이

 

곳은 단순히 서양화들을 모아놓은 전시 공간을 넘어, 건물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근대 건축 교과서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입니다. 오늘은 전공자의 시선으로 이 건축물 속에 숨겨진 거장의 철학을 꼼꼼히 짚어보겠습니다.

 

1. 필로티와 피로티, 대지를 자유롭게 하다

미술관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건물을 공중에 띄우고 있는 얇은 기둥들입니다.

이것이 바로 르코르뷔지에가 제안한 근대 건축의 5원칙 중 하나인 필로티(Pilotis)입니다.

그는 건물이 땅을 차지해버리는 것이 아니라, 기둥으로 건물을 들어 올려 그 아래 공간을 사람들이 자유롭게 지나다닐 수 있는 개방된 장소로 만들고자 했습니다. 국립서양미술관의 1층 로비가 유독 시원하게 트여 있는 이유도 바로 이 철학 때문입니다.

미술관 안으로 들어가기 전, 기둥 사이로 들어오는 빛과 바람을 느끼며 거장의 배려를 확인해 보세요.

국립서양미술관 본관 외관, 르 코르뷔지에 설계, 도쿄 국립서양미술관 소장, 국립서양미술관 공식 홈페이지

 

국립서양미술관 평면도 및 설계 도면, 르 코르뷔지에, 파리 르 코르뷔지에 재단 소장, 르 코르뷔지에 재단 공식 홈페이지

 

2. 무한 성장 박물관(Museum of Unlimited Growth)의 실현

르코르뷔리에는 박물관이 유물의 양에 따라 언제든 확장될 수 있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는 소용돌이 모양의 평면을 설계하여, 전시물이 늘어날 때마다 건물을 바깥쪽으로 계속 덧붙여 나갈 수 있는 무한 성장 박물관 개념을 도입했습니다.

 

실제로 국립서양미술관 본관 내부를 걷다 보면 중앙 홀인 19세기 홀을 중심으로 나선형으로 동선이 이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관람을 위한 통로가 아니라, 공간이 유기적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건축적 장치입니다. 전시실을 이동할 때마다 바뀌는 천장의 높낮이와 창문의 배치 또한 관람객이 지루함을 느끼지 않도록 정교하게 계산된 결과입니다.

 

19세기 홀 내부와 삼각형 채광창, 르 코르뷔지에 설계, 도쿄 국립서양미술관 소장, 국립서양미술관 공식 홈페이지
19세기 홀 내부와 삼각형 채광창, 르 코르뷔지에 설계, 도쿄 국립서양미술관 소장, 국립서양미술관 공식 홈페이지

 

 

3. 인체 치수의 마법, 모듈로(Modulor) 시스템

 

전공자들이 이곳에서 가장 흥미로워하는 부분은 바로 모듈로입니다. 르코르뷔지에는 인간의 신체 비율을 바탕으로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황금비율을 계산해 건축에 적용했는데, 이것이 모듈로 시스템입니다.

 

국립서양미술관의 기둥 간격, 천장 높이, 창문의 분할 등은 모두 이 수치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전시실에 서 있을 때 왠지 모를 안정감과 조화로움을 느끼신다면, 그것은 여러분의 신체와 건물의 치수가 공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19세기 홀의 천장에서 내려오는 은은한 자연광은 이 수학적 완벽함 위에 예술적 감수성을 더해줍니다.

 

모듈로 개념도, 르 코르뷔지에, 르 코르뷔지에 재단 제공, 르 코르뷔지에 재단 공식 홈페이지

 

 

4. 관람객을 위한 전공자의 감상 포인트

 

첫째, 본관 2층으로 올라가는 램프(경사로)를 천천히 걸어보세요. 르코르뷔리에는 계단보다 경사로를 선호했는데, 이는 공간이 끊기지 않고 연속적으로 변화하는 풍경을 관람객에게 선물하기 위함입니다. 걷는 속도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내부 건축미를 즐겨보시길 바랍니다.

 

둘째, 건물 외벽의 자갈 섞인 콘크리트 패널을 살펴보세요. 이는 당시 르코르뷔리에가 시도했던 새로운 공법으로, 차가운 콘크리트에 자연적인 질감을 더해 따뜻한 숨결을 불어넣으려 했던 흔적입니다.

 

셋째, 미술관 앞뜰에 놓인 로댕의 조각품들과 건축물의 조화를 감상하세요. 거친 콘크리트 질감과 청동 조각의 육중한 무게감이 어우러져, 이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독특한 아우라를 형성합니다.

 

전공자인 저에게 국립서양미술관은 전시된 작품들보다 그 작품들을 담고 있는 그릇, 즉 건물의 이야기가 더 크게 다가오는 곳입니다. 르코르뷔지에가 꿈꾸었던 근대 건축의 이상향이 도쿄 한복판에서 어떻게 숨 쉬고 있는지, 이번 여행에서 꼭 직접 확인해 보시길 바랍니다.

 

국립서양미술관 본관 필로티 구조, 르 코르뷔지에 설계, 도쿄 국립서양미술관 소장, 국립서양미술관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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